기타

세월의 그늘 밑.

白夜(백야) 2022. 3. 17. 22:38

매화 (촬영:백야)

플랫홈에 서니 저 멀리서 커다란 두개의 불빛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야차와 같이  달려든다.

장항선 하행선 밤차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거운 쇠바퀴가 철레일에 발목을  잡히면서 힘들게 내 앞에 멈춰 선다.

문이 열리면서 안에서 낯설은 사람들이 몇사람 열차계단을 내려온다.

어딘지 모르게 무사히 목적지에 왔다는 안도의 숨들이 내뱉어지고 열차는 무거웠던 짐을 내려준다.

마지막 사람이 다 내려온 것을 확인하고 뱉어진 안으로 들어선다.

항상 느끼는 기분이지만 밤열차는 나에게 암연같은 무거운 무게로 나를 강압적으로 내리 눌러 어떤 절망같은 고독감이 처절하게 나를 감싸 안아 꿀꺽 삼킨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밤 열차는 나를  떠나기 싫은 곳을 억지로 떠밀어   쫓아 내는듯 그런 외로움과 서러움의 알수 없는 기분에 치를 떨게 하곤  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이런 것일가?  고향아닌 타향에서 서럽게 유리 걸식 하다가 다시 타향으로 돌아 가야 하는것, 

고향을 떠난지 사십여년이 지났는데 고향에 찾아 왔다 돌아가는 마음은 항상 허전한 빈 가슴에 서러움만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만 붓는 것 같은 그런 윤회의 수레바퀴 같은 것이 아닌지.

어제는 누님집에서 하루 묵고 오늘 함께 둘째형과 세째형 새로 지은 집을 돌아보고 돌아가는 것인데 이제 나만 혼자 떨어져서 남행열차를 타고 내려 가는 것이다.

 

둘째  형수님 하시던 말씀이 귀에 맴돈다...

새로 지은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나 죽으면 지들 와서 살기 좋게 지들 맘대로 지었다고 막 뭐라했어....

이십대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시부모와 그리고 층층 시동생 다섯을 뒷바라지 하시다가 형님은 오래전 먼저 가시고 ,자식들 오남매 모두 성장해서 객지로 나가고 이제 나이가 팔십이 넘어  가버린 그동안의 세월의 안타까움을 얼굴과 허리가 먹어치운 것이다. 그렇게 두째형과 세째형 사이가 좋아서 네것 내것없이 지낸다고 해서 의좋은 형제라고 KBS 내고향 6시에 방송을 탄지가 엇그제 같은데,둘째 형님은 십여년전에 먼저 가시고 이제 형수님만 남았다.

막 시집온 한복 곱게 입은 형수님은 나한테 막내 도련님 막내 도련님 하고부르셨었다.

어느덧 나도 함께 늙어가고 있으니..

새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헐은 옛날 살던 집앞에 지천으로 수선화가 이제 막 잎이 무성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너무 싱싱하고 좋다고 매형은 몇뿌리 챙기신다. 나도 결국은 몇뿌리 챙겼다. 재 작년에 너무 추워서 아파트에서 기르던 화초가 모두 동사하는 바람에 속이 상해서 이제는 집에서 화분을 기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또 견물생심으로 추켜든 것이다.

 

함께 갔던 사람들이 떠나려 모두 차에 오른뒤  둘째 형수님이 이것하고, 검은 봉지를 내미신다.

언니 뭐어? 누나가 물었다. 나싱개(충청도 사투리 냉이)  아이구 언제 캤디야...어제 온다길레 캤지...끈적이는 정이 한보따리 건네진다.

내려 오면서 누나는 그랬다.오늘 가면 우리가 언제 또 와볼지 모르지?그지?...했었는데...

새로 지은 형님집 앞을 지나 떠나오면서  자꾸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렇게 아쉬운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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