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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의상

白夜(백야) 2005. 7. 13. 08:53


 

   

                        고풍의상(조지훈)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 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 저고리

       호장 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蝴蝶)

       호접인 양 사풋시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